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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너무 길어서 이글루가 반사! 하는군요...orz
그래서 두 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상편은 아래 포스팅입니다. ※주의. 건슬링거걸을 모르시는 분들은 당연히 재미 없을 테고, 건슬링거걸을 아시는 분들은... 솔직히 그래도 재미는 보장 못하겠습니다.(쿨럭!) * * * * “응?”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로베르토는 긴장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5공화국파의 접선인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기에 어둠 너머로 드러난 얼굴이 여성의 것임에도 그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이곳엔 무슨 일로?" "저어… 성을 구경하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여성의 입술 사이로 앳띤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그제서야 로베르토도 긴장을 풀며 미소를 지었다. 화장을 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소녀였다. 경계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손님의 가족인가…' 그녀의 이름을 물어보려던 로베르토는 이내 그 질문을 혀끝에서 지워버렸다. 소녀를 경계할 이유는 없었지만 5공화국파와 접선하는 모습을 일반인인 그녀가 보게 된다면 골치 아파질 것이 분명했다. “이 성은 제법 크기 때문에 길을 잃기 쉽지. 자, 내가 연회장으로 안내해 줄 테니 따라오렴.” 접선 장소를 떠나는 것이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성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그에게 연회장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런데 소녀를 안내해 주기 위해 계단 쪽으로 돌아선 그의 머릿속에 문득 뒤늦은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잠깐? 1층 계단에는 분명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이 성은 위층으로 통하는 길이 오직 양쪽의 계단 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만약 누군가 계단을 통해 올라오려 했다면 경호원이 제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등 뒤에 선 소녀가 3층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호원들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한순간이었다. 경계를 할 틈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소녀에게 묻기 위해 고개를 돌린 로베르토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어지럽게 흔들리는 하얀 드레스와 소녀의 가느다란 두 팔, 그리고 바닥과 천장이 반 바퀴 돌아가는 장면이었다. * * * * 로베르토 베르티가 등을 보인 순간 수줍음으로 가득하던 트리엘라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한 걸음, 두 걸음, 발을 구르며 점프.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던 로베르토 베르티가 갑자기 몸을 돌리며 무어라 말했지만 이미 트리엘라 두 팔은 그의 턱과 머리를 쥐어 잡은 뒤였다. 장갑으로 가려진 트리엘라의 가냘픈 두 손이 로베르토의 턱과 머리를 잡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 힘을 견디지 못한 그의 목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사뿐히 착지한 트리엘라와는 달리 로베르토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짧은 정적 속에서 트리엘라는 로베르토 베르티의 맥을 짚어 보았다. 산 사람에게서는 반드시 느껴져야 하는 박동이 그의 목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타겟 제거 완료.“ 대답이 들려올 리 없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읊조리며 그녀는 로베르토 베르티의 목덜미를 잡아들었다. 아직 임무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트리엘라의 손에 간단하게 들려진 그의 시신은 들려진 것만큼이나 간단하게 던져졌다. 계단 여기저기에 부딪히며 2층까지 굴러간 로베르토 베르티의 시신은 줄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바닥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임무 완료.” 어려운 것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연기가 어떠했는지 평가해 줄 이가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쉬운 트리엘라였다. * * * * 파티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었다. 주인공인 로베르토 베르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의 역할은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말을 할 때 뿐 파티는 연회객들의 향연만으로도 충분히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춤을 추는 이들, 담화를 나누는 이들, 음식을 즐기는 이들, 그리고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둔 채 들고 있던 잔을 한 모금 마시는 히르샤. 임무 수행 중에 알코올 섭취는 절대 금지였기에 그의 와인 잔에는 술이 아닌 물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그가 와인 잔을 반쯤 비웠을 때 복도 입구에서 트리엘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가벼운 걸음에 히르샤는 문제없이 임무를 완료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타겟은?” “완전하게 침묵. 무대도 확실하게 준비해 두었습니다.” 트리엘라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히르샤는 그제서야 긴장을 풀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트리엘라는 자신이 믿었던 대로 완벽하게 임무를 끝마쳤다. “지금 빠져나가면 의심을 사게 될 수 있으니 파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자.” 파티의 끝나기까지는 아직 2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타겟의 시신이 있는 장소에 장시간 남아있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지만 지금 두 사람만 성을 나선다면 분명 후에 로베르토 베르티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연관지어질 수도 있기에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다. “타겟이 발견된다면 좀 더 일찍 파티가 끝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12시에 끝날 거야. 아직 두 시간 정도 남았으니 남은 시간이라도 파티를 즐기도록 해. 와인만 빼고 다 허락해 줄 테니.” “네…” 공사 구분을 중요시하는 히르샤로서는 나름대로 어렵게 꺼낸 말이었지만 트리엘라의 반응은 그다지 시원치 않았다. 그녀는 그저 벽에 몸을 기댄 채 계속 한곳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임무를 시작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시선은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 고정 되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본 히르샤가 긴 침묵을 깨고 흘리는 말투로 물었다. “춤추고 싶어?”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는 트리엘라가 흠칫거리며 놀라는 모습을 두 번이나 보게 되었지만 히르샤는 태연하게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히르샤의 시선을 마주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다.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다만… 신기해서요.” 트리엘라는 둘 곳 없는 시선을 자신의 치마에 고정시키며 대답했다. 허리 아랫부분이 허전해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신기해?” 히르샤의 의아해하는 목소리에 트리엘라는 두 손으로 치마의 레이스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요 일주일 동안 춤을 배우는 동안 힘들고 어렵고 어색하기만 할 뿐, 즐겁다는 기분은 전혀 느낄 수 없었는데 저기 저 사람들은 무척 즐거워 보여서요. 어째서 저렇게 즐거워하는 걸까… 그게 신기해서 바라본 것뿐이에요.” 그렇게 대답하는 트리엘라의 시선은 다시 치마에서 무도장으로 옮겨졌다. 그 시선에는 분명 의아함이나 호기심이 담겨져 있었지만 히르샤가 찾아낼 수 있었던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춤 춰볼래?" 처음엔 히르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트리엘라가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 침묵도 잠시, 이내 머릿속에서 그 질문을 이해했고 마치 반사작용과도 같이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녀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 위해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고개를 숙이며 침착하게 되물었다. "가, 갑자기 춤이라뇨?" 그 급조된 침착함이 떨림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히르샤는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일부로 모르는 채 하는 건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훈련과 실전의 감각은 엄연히 다른 법이지. 한 번 실험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또, 일주일 동안 애써 연습한 게 아깝기도 하고." “하, 하지만 사람들 눈에 띄는 행동은 자제하는 편이…” “이렇게 몇 시간 동안 내내 우두커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띄고 있어. 의도적으로 숨으려 드는 것보다 그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더 효율적인 위장술이지. 안 그래?” 트리엘라는 이젠 입까지 살짝 벌리며 히르샤를 쳐다보았다. 평소의 히르샤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낯설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원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꿈에서나 경험할 수 있었던 일이 갑작스레 현실이 되어버리자 실감할 수 없어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패닉 상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당황한 트리엘라는 어떤 대답을 꺼내야 할지 몰라 그저 흔들리는 시선으로 히르샤와 무도장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긴 침묵은 히르샤에게 부정적인 의미를 유추하게 만들었다. 그는 쓴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한 것 같군. 그냥 못 들은 걸로…” “아, 아뇨! 출게요!” 사과하듯 얼무던 히르샤가 트리엘라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히르샤와 트리엘라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외침에 히르샤 뿐만이 아니라 트리엘라 자신도 놀란 것이다. “에, 그게… 히르샤 씨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 확실히 실험해 볼 가치가 있는 상황이고… 또 효율적인 위장술이란 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고… 에, 또… 히르샤 씨가 원한다면…” 자신조차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모를 정도로 횡설수설하던 트리엘라는 왠지 참담한 기분을 느끼며 입을 다물어버렸다. 왠지 고개를 들 수 없어 자신의 치마를, 그리고 치마의 레이스를 만지작거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트리엘라는 자신의 시야를 채우는 히르샤의 손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서서 오른손을 내밀고 있었다. "Werden wir tanzen?(Shall we dance?)" 격식을 취하며 춤을 청하는 히르샤의 모습에 트리엘라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흥분으로 생겨난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억누르진 못한 그녀였고 그 떨림은 자연스레 히르샤의 손으로도 전해졌다. “트리엘라 네가 긴장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긴장하지 않았어요." 괜시리 화를 내며 말을 얼무는 트리엘라에게 히르샤는 그저 미소로 답해주곤 그녀를 에스코트해 무도장으로 들어섰다. 춤을 추는 남녀들 사이에 적당히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인사를 건네곤 손을 마주잡았다. 트리엘라 쪽이 히르샤의 어깨를 겨우 넘는 작은 키인지라 춤을 추기에는 조금 불편한 자세였지만 두 사람 모두 상관하지 않고 자세를 취했다. "히르샤 씨." “응?” “너무 못 추더라도…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두 손을 마주잡고 발을 맞추던 와중에 트리엘라가 작게 속삭였다. 그녀가 왈츠의 교본대로 시선을 맞추지 않고 있어 히르샤는 트리엘라의 눈 대신 그녀의 빨개진 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걱정 마. 나도 잘 추는 건 아니니까." * * * * 슈타우프 베어의 옷을 직접 만들고 있는 트리엘라와 여느 때처럼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클라에스의 방으로 헨리에타가 쳐들어온 건 저녁 식사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늦은 밤 중이었다. 갑작스레 방으로 들이닥친 헨리에타는 들이닥친 것 만큼이나 갑작스레 트리엘라에게 어제 밤의 일, 정확하게 말하자면 히르샤와 추었던 춤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트리엘라는 대답 대신 먼저 그 소문의 출처를 추궁했고 헨리에타는 망설임 없이 침대 위의 클라에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트리엘라는 능청스레 콧노래를 부르며 시선을 피하는 클라에스를 따가운 시선으로 노려봐준 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제 밤의 일을 요약해서 말해주었다. “…그리곤 12시 정각에 파티장에서 유유히 빠져나왔지. 그걸로 끝.” "그래서, 어땠어?" "어땠냐니?" "춤말이야, 춤." 잔뜩 들뜬 헨리에타의 목소리에 트리엘라는 체크 무늬의 옷감에 바늘을 꽂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춤에 대한 평가를 말하는 거라면, 최악이었지. 내 쪽도 문제였지만 히르샤 씨도 굉장했으니까. 음악이 끝날 때까지 서로 발을 밟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 헨리에타가 그녀의 과장된 푸념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클라에스는 헨리에타와 같이 웃는 대신 트리엘라가 애써 얼무려던 질문을 다시 끄집어내었다. “헨리에타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라 담당관과 춤을 추는 기분에 대한 거 같은데?” “응응. 나도 그게 궁금해.” 헨리에타가 뒤늦게 웃음을 멈추며 클라에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당연히 클라에스를 향한 트리엘라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따갑게 변했다. “클라에스.” “신데렐라가 된 기분은 나도 궁금해서 말이지.” 클라에스의 마지막 한 마디에 트리엘라는 결국 자포자기하곤 들고 있던 옷감과 바늘을 내려놓았다. 맥이 빠져 바느질을 할 기운조차 사라져버린 그녀였다. “뭐, 춤은 최악이었지만… 솔직히 기분은 좋았어. 춤 추는 건 일주일 동안 지겹도록 경험했지만 히르샤 씨의 말대로 훈련과 실전의 감각은 많이 다르더라. 특히 춤이란 건.” “내 소견으로는, 기분이 좋았던 건 춤 때문이 아니라 파트너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어설픈 춤 실력이라 해도 왕자님은 왕자님이니까.” “클라에스, 너 자꾸 그럴 거야?” 트리엘라가 정말 화가 난 얼굴을 하자 그제서야 클라에스도 항복했다는 듯 살짝 손을 들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 머무는 미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흐음, 트리엘라는 좋겠다. 나도 죠제 씨와 춤 춰보고 싶어.” 예전에 본 동화책 속의 파티 장면을 떠올리며 헨리에타가 부러움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죠제 씨라면 직접 파티를 열어서라도 춰주실걸?” “하지만 난 춤을 출 줄 모르는걸. 파티 드레스도 없고.” “춤이야 배우면 되고 드레스는… 내 거라도 좋다면 얼마든지 사용해도 돼.” 트리엘라의 말이 주문이라도 된 것처럼 모두의 시선이 거울 옆에 걸려 있는 흰색 파티 드레스 쪽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저건 트리엘라 거잖아. 히르샤 씨가 직접 사서 선물해주신 소중한 건데…” “선물은 무슨. 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 걸 버리기 아까워서 그냥 떠넘긴 게 분명할 거야.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옷인걸. 곰인형을 선물하는 것처럼 취향 같은 거 생각하지도 않고…” 물론 곰인형은 어쩌다보니 취향이 되어버렸지만 드레스까지 좋아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은 트리엘라였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듯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갑작스레 헨리에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냐!” 그 단발마의 외침에 트리엘라 뿐만 아니라 클라에스까지 놀란 눈으로 헨리에타를 바라보았다. “히르샤 씨는 분명 트리엘라를 생각하면서 저 드레스를 사셨어.” 결의까지 느껴지는 헨리에타의 목소리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한은 트리엘라였지만 그 침묵은 문자 그대로 아주 잠시 동안일 뿐이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트리엘라는 또박또박 그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 하는데?” “어째서냐면… 죠제 씨는 언제나 날 생각하면서 선물을 사주시는걸.” 트리엘라는 이번에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당황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웃음을 참느라 생겨난 침묵이었다. 그렇게 겨우 웃음을 참아낸 트리엘라는 헨리에타에게 동생을 타이르듯 그녀의 실수를 설명해주었다. “헨리에타. 네가 죠제 씨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건 잘 알지만 그렇다고 죠제 씨를 세상 사람들의 중심으로 두는 건 잘못된 생각이야. 죠제 씨는 죠제 씨, 히르샤 씨는 히르샤 씨. 엄연히 다른 사람이라고.” “하지만 트리엘라의 말이 사실이라면… 너무 슬프잖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생각해주지 않는다니…” “아니, 그러니까 좋아한다 싫어한다의 문제가 아니잖아…” 눈물까지 글썽이는 헨리에타를 보며 트리엘라는 난감하다는 얼굴로 클라에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물론 클라에스는 이미 그녀들에게서 시선을 뗀 채 책에 몰두하고 있었다. 정말 책을 읽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아, 왠지 무척 피곤한데…’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해 그저 훌쩍이는 헨리에타를 토닥여주던 트리엘라는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피곤함을 애써 억눌르며 작게 한숨지었다. * * * * 로렌쵸가 오늘자 조간신문에서 로베르토 베르티의 기사를 찾은 것은 첫면을 펼쳐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사인은… 심근 경색이라. 그의 후계자들도 생일 파티에서 추락사했다는 말을 꺼내긴 힘들었겠지. 괜히 파티에 초대 되었던 유명인사들에게 피해가 가게 만들 수는 없을 테니." "조사해본 바로는 로베르토 베르티만이 독자적으로 5공화국파에 가담했을 뿐 그의 자식들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쟝이 들고 있는 서류를 보며 로렌쵸의 말을 거들었고 로렌쵸는 파이프 담배를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5공화국파의 스폰서 하나가 사라졌군. 이 정도 결과라면 위에서도 만족하겠지. 최근 들어 의체의 범용성에 대한 성과를 가장 원했었으니까. 1과 녀석들도 이번 일로 얼마 동안은 입 다물고 있을 테고." 로렌쵸는 신문을 내려놓으며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나름대로 걱정이 많았던 작전이었지만 다행히 문제없이, 아니 오히려 생각했던 것 이상의 성과로 끝낼 수 있었다. "히르샤의 공이 크군." "아닙니다." "이번 작전으로 5공화국파는 굵은 자금줄을 잃었다. 당분간 녀석들도 쉽게 활동하지는 못하겠지. 그 사이에 우리는 녀석들의 핵심 인물들과 중요 아지트 탐색에 전념하도록 한다.“ 로베르토 베르티 건에 대한 이야기를 끝낸 로렌쵸는 다른 서류를 펼쳐들며 다시 말을 이었다. “죠제는 오늘 로마에 한 번 더 다녀오도록 해. 로마지부에서 요청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쟝은 내일 피렌체로 이동하도록. 자세한 설명은 개별적으로 통보해 주겠다. 질문 있나?“ 료렌쵸의 물음에 짧은 침묵이 이어졌고 그는 침묵을 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없으면 이상으로 회의를 마친다. 해산." 로렌쵸의 해산 명령을 마지막으로 2과 대원들은 차례차례 회의실 문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나선 죠제가 앞서 가던 히르샤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불렀다. “히르샤.” “아, 죠제 씨.” “트리엘라와 춤 췄다면서?” 죠제의 물음에 히르샤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어떻게 그걸?” “어제 저녁에 헨리에타가 말해주더군. 엄청 부러워하는 얼굴로 말이야.” 죠제는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히르샤는 같이 웃는 대신 난감해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와인 향에 취하기라도 했었나 봅니다. 나름대로 죠제 씨를 따라해 본다고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저지른 거죠.” “어이어이, 그런 건 나라고 해도 선뜻 해내지 못한다고. 임무가 끝났다 해도 작전 장소에서 춤을 춘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저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그런 돌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히르샤.” “네?” “오해하고 있나본데 난 지금 질책하고 있는 게 아니야. 오히려 칭찬하는 거라고.” 자신의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듯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히르샤를 웃음소리로 깨우며 죠제는 계속 말을 이었다. “자네와 트리엘라. 요즘 사이가 어색해졌다고 했었잖나. 남녀간에 틀어진 마음을 바로 잡는데에는 선물과 달콤한 밀어만 있는 게 아니야. 신체적 접촉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지. 경험자로서 말해주는 건데, 좋아하는 사람과 춤을 추는 걸 싫어하는 여성은 없어.” 히르샤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죠제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의 눈동자에서는 더 이상 난감함이 보이지 않았다. “아, 그건 그렇고 드레스는 어땠나? 자네가 나름대로 고민해서 고른 옷이었잖나.” 죠제의 질문에 무어라 대답하려던 히르샤가 멀리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소녀들이 있었다. 길게 뻗은 복도를 따라 헨리에타와 리코, 클라에스, 그리고 트리엘라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었다. 트리엘라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정장을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여성용 정장 바지과 흰색 와이셔츠, 그리고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흑색 구두. 언제나와 같은 복장. 그러면서도 가장 잘 어울리는 복장. 히르샤는 왠지 모르게 허탈해져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응?” “정장을 선물할 걸 그랬나 봅니다.” 죠제의 낮은 웃음소리가 복도를 메아리쳤다. -Fin- 후기. 그러고 보니 리코는 등장하지도 못했네...orz | |||